세종시 비암사 : 천년의 침묵을 깨고 드러난 백제 유민의 간절한 염원과 보물 백제 불교의 흔적이 남아 있는 유서 깊은 고찰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에 위치한 비암사(碑岩寺)는 화려한 도심의 불빛에서 벗어나 시간이 멈춘 듯한 평온함을 선사하는 곳입니다. 특히 이곳에서 발견된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은 우리나라 불교 미술사의 보물로 꼽히죠.세종시 비암사 천년의 침묵을 깨고 드러난 백제 유민의 간절한 염원과 보물 백제 불교의 흔적이 남아 있는 유서 깊은 고찰 입니다.

1. 전의면 비암산 자락에 숨겨진 고즈넉한 사찰의 첫인상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다방리에 위치한 비암사는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범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냅니다. 수령이 8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사찰의 수호신처럼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은 방문객들에게 이곳이 범상치 않은 세월을 버텨온 곳임을 암시합니다. 비암사는 다른 사찰과는 달리 죽은 이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역할로 특화된 시찰 이라 합니다.비암사는 세종시의 대표적인 산사 중 하나로, 규모는 작지만 가람의 배치가 조밀하고 정갈하여 아름다운 사찰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특히 일주문에서 본당까지 이어지는 길은 사계절 내내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내는데, 봄에는 야생화가, 가을에는 울긋불긋한 단풍이 산사의 단청과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연출합니다. 도심 속의 소란함을 잠시 잊고 진정한 휴식을 취하고 싶은 이들에게 비암사는 최적의 안식처가 되어줍니다.


2. 백제 멸망의 한과 부흥의 의지가 서린 역사적 배경
비암사의 창건 시기는 정확한 기록이 없으나, 전해지는 유물들을 통해 백제 멸망 직후 백제 유민들이 세운 사찰로 추정됩니다. 1960년대 이곳에서 발견된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국보 제106호)의 기록에 따르면, 백제가 멸망한 후 유민들이 망국의 한을 달래고 조상의 명복을 빌기 위해 이 사찰을 창건하고 불상을 조성했다고 합니다. 멸망한 나라의 후예들이 산속 깊은 곳에 모여 부처님의 자비 아래 다시 일어서고자 했던 간절한 염원이 비암사의 기둥 하나, 기와 한 장에 서려 있는 셈입니다. 매년 4월15일에 백제인의 한과 넋을 위로 하는 백제대제를 거행 하고 있다 합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 때문에 비암사는 단순한 종교 시설을 넘어 백제 문화의 마지막 불꽃을 간직한 역사적 성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3. 한국 불교 미술의 정수, 비암사 비상과 극락보전
비암사에서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보물은 단연 비상들입니다. 비석 형태의 돌에 불상을 새긴 독특한 양식인데, 이는 통일신라 초기 충청도 지역에서 유행했던 특별한 형식입니다. 현재 비암사에서 발견된 주요 비상들은 국립청주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지만, 사찰 내에는 그 복제품과 함께 당시의 예술 혼을 느낄 수 있는 흔적들이 가득합니다. 또한, 보물로 지정된 비암사 극락보전은 조선 초기의 건축 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의 닫집(불단 위의 화려한 장식)은 조각이 매우 섬세하여 조선 시대 목공예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불비상의 존재와 함께 비암사가 백제의 슬픈 역사와 백제 유민들의 아픔을 위로하는 사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비암사의 공간 배치를 통해서도 확인 됩니다. 일반적으로 대다수 사찰의 중심은 석가모니를 모시는 대웅전이나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대적광전 이지만 그러나 비암사는 아미타불을 모시는 극락보전이 중심이 되는 사찰 입니다. 아미타불은 사후 세계를 관장하는 부처로, 비암사가 죽은 이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사찰로서 특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비암사가 백제인들을 위로하고, 그들이 좋은 곳으로 가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기원하는 공간인 것 입니다. 이 건물 안에 앉아 있으면 시대를 넘나드는 예술적 영감을 얻기에 충분합니다.

4. 세종시 민속문화의 보존처와 삼층석탑의 미학
극락보전 앞마당에는 소박하지만 당당한 체구를 가진 비암사 삼층석탑이 서 있습니다. 고려 시대 양식을 계승한 이 석탑은 비암사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며, 탑 주위를 돌며 소원을 비는 신도들의 오랜 신앙처가 되어왔습니다.
탑은 기단부,탑신부,탑두부 등 세 부분으로 나누는데, 상대갑석 이하 부분은 1982년 복원할 때 신판석으로 대처했는데, 이 기단부는 하대저석,중석,갑석 등으로 각각 4매되의 판석으로 기초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위에는 중석면에 각각 탱주를 모각했으며, 그리고 우주를 각각 세워 상대갑석을 받치고 있습니다. 상대갑석은 2매의 판석으로 탑의 앞부분의 한쪽 귀퉁이가 심하게 떨어져 나갔으며, 1층탑신을 받치고 있습니다. 탑신면에는 양측면에 우주가 모각되어 있고, 옥개괴임은 4단으로 되어 있으며 1층탑신부가 2층,3층에 비하여 매우 길어서 불균형하게 보이며, 우주옆 또한 마모가 심하네요. 탑두부에 해당하는 노반만이 남아 있고, 상륜부는 소실되었지만, 전체적인 균형이 알맞고 노반석의 하부받침은 3층옥개석과 맞붙어 있는데, 노반부 윗부분은 떨어져 금이 간 것을 붙였다 합니다.
비암사삼층석탑은 시대적으로 통일신라 후기 불탑의 특징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전형불탑의 규범을 벗어나 한층 더 약화와 생략을 가져왔으며 자유로운 표현 형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후기 불탑보다 규모가 더욱 축소되고, 구조면에서 석재의 수도 감소되어 건축적인 것보다는 공예적인 성격이 강하게 되었다 합니다. 또, 기단부에 탱주가 하나로 줄어졌는데 즉, 통일신라전기에서는 상층 기단은 두 개, 하층 기단은 세 개로 각 층 중석면을 각각 3구 4구로 구분하였으나 중기 불탑은 상하 모두 두 개로 중석면을 각각 3구로 구분하였던 것 입니다. 그러나 이 비암사삼층석탑은 하대저석 한 개, 하대중석과 하대갑석이 상하 모두 한 개씩으로 축소되어 즉 3단으로 기단부가 축소되었다 합니다.
또한, 탑신부의 옥개석 처마 단면을 경사지게 자르고, 옥개석 받침이 일률적으로 다섯 단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네 단으로 만들어졌으며 그리고 각 부의 석재 구성은 옥개석과 옥신이 단일화 되고, 옥신괴임과 중석받침도 없어져 자유로운 변화와 아울러 형태의 통일성을 잃는 등 많이 변모하였다 합니다. 그리고, 단아하고 안정감을 느끼지만 기단폭과 초층 옥신폭에 비해 높이가 많이 높아져 귀퉁이가 마모가 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불안하고 불균형한 형태를 보여 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또한 비암사는 매년 백제 대제를 지내며 백제 유민들의 넋을 기리는 민속적 전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사찰 곳곳에는 지역 주민들의 삶과 신앙이 녹아 있는 작은 돌탑들과 민속 유물들이 흩어져 있어, 마치 야외 박물관을 거니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합니다. 이러한 민속적 가치는 비암사가 지역 사회에서 단순한 사찰 이상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음을 증명합니다.

5. 힐링 산책로와 아니 온 듯 다녀가소서의 철학
비암사는 산책로가 매우 잘 조성되어 있어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 인기가 높습니다. 사찰 주변을 감싸고 있는 숲길은 경사가 완만하여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으며, 길목마다 적혀 있는 불교적인 문구들은 걷는 이로 하여금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특히 비암사의 슬로건처럼 사용되는 아니 온 듯 다녀가소서라는 문구는 머문 자리를 깨끗이 하고 마음의 흔적조차 비우라는 깊은 가르침을 줍니다. 지금 내곁에 있는 모든 인연이 내 전생의 억겁이라 합니다.미워도 고와도 다 내 탓인겁니다.미운사람도 밉다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와 사찰의 고요함이 만나 뇌를 맑게 해주는 브레인 힐링이 가능하며,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는 천연의 화이트 노이즈가 되어 스트레스를 완화해 줍니다.


6. 방문객을 위한 팁 근처 맛집과 여행 연계 코스
비암사를 방문할 때는 자가용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며, 주차 공간이 넉넉하여 접근성이 좋습니다. 전의면 일대는 예로부터 물이 맑기로 유명하여 인근에 전의초수라는 약수터도 있으니 함께 들러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듯이, 사찰 인근에는 소박한 시골 밥상을 제공하는 식당들이 많아 산채비빔밥이나 손두부 요리로 건강한 한 끼를 즐기기에 좋습니다. 또한 세종시 내의 베어트리파크나 세종호수공원과도 차로 20~30분 거리여서, 전통 사찰 탐방과 현대적인 관광을 동시에 즐기는 하루 여행 코스로 구성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